여러분은 어디서 살고 계신가요? 어디서 살고 싶으신가요? 이번 달은 유독 어디서 살아가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 갔을 땐 전주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그다음 주엔 바다가 있는 제주도에서, 서울 갔을 땐 페스티벌과 공연 접근성이 좋은 서울에서, 곡성에 돌아오니 농사지을 수 있는 곡성에서 살아가고 싶었어요. 심히 변덕스럽죠? 여기저기 만족스러운 곳이 많은 것이니 즐거운 고민이라고 생각해보겠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19살까지 그곳에서 살았어요. 20살 대학생이 된 후 5년간 서울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곡성에 내려와 1년살이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제주, 서울, 곡성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지역에 따라 제 삶의 형태가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가치관, 배움, 관계, 외모, 하루를 보내는 방식, 취미, 문화생활 등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네요.
공간의 전환을 통해 저는 새로운 삶을 맞아들였어요. 제주도에 살 땐, 마냥 행복했어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바다는 언제든 갈 수 있었죠. 영원할 것 같은 친구들과 가족들도 있었고요. 서울에 올라와서 엄청나게 높은 건물과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겨울 추위를 경험하고 아주 깜짝 놀랐어요. 연합동아리에 들어가 MT도 가고 공연도 해보고, 학교 친구들과 대학축제도 즐겨보고, 대학 동아리 언니들에게 사랑도 받아봤어요. 시험공부 하느라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밤도 새워보고, 미팅도 해보고, 해외여행도 가봤네요. 때로는 남는 게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남아있는 게 많네요.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남은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냥 행복했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대학생 때 처음으로 사회문제들이 저의 것으로 다가왔어요. 제주도에 살 때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마냥 육지의 일 같았고, 멀게만 느껴졌어요. 내 일상과 내 친구들의 문제에 국한된 시선을 갖고 살았어요. 사회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배우고 대화 나눌 기회도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학교는 달랐죠. 끊임없이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목소리 내는 학우들이 있었어요. 교양수업을 들으며 불평등한 구조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공고화되었는지 배울 수 있었고,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사회에 저도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동아리에서는 페미니즘과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아 옆에서 보고 들으며 인식할 수 있었어요.
졸업하고는 사회복지사로 1년간 우당탕탕 사회생활을 경험했어요. 돈을 벌어들인 덕분에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 살수록 뭔가 이상했고, 적응이 안 됐어요. 과도하게 밀집된 사람과 차량. 자연과는 거리가 있는 도시. 관계의 안정감도 딱히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해서 제주도에서 살고 싶은 갈망이 있었어요.
어쩌다보니 곡성으로 왔네요. 저를 홀릴 만한 무언가가 있었나봐요. 이전까지 농사는 제 삶의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농사가 왜 중요한지 인식하게 되었어요. 때에 따라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밥을 차려 먹고, 내가 먹을 것을 직접 심고 거두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장 가르기를 하여 된장과 간장을 얻고, 손바느질로 직접 옷을 수선해보기도 해요. 이곳에서 살며 '할 줄 아는 게 많이 없었구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서는 특정 영역을 주로 파고들지만, 이곳에서는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곡성에 친구는 별로 없어요. 대신 이웃들은 많아요. 가까이 살며 자주 관계 맺고, 서로 나누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일 년 뒤에 어디서 살고 있을 것이냐!? 아무도 모르죠.
공간의 전환이 저에겐 엄청난 삶의 전환으로 연결됐는데요. 여러분의 삶의 전환은 주로 무엇을 통해 이뤄지는지 궁금하네요. |